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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최윤호 2015. 7. 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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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지은이 : 염상섭

엮은이 : 김경원

출판사 : 사피엔스21

출판일 : 2012-07-06

 

작가 염상섭씨가 일제시대(1922년)에 3.1 독립운동(1919년) 전해의 겨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원제는 <묘지>였다고 하며, 독립 후에 개작하면서 <만세전>으로 고쳤다.

 

내용은 익히 알려진바와 같이, 일본에 유학가 있는 나(이인화)가 아내의 죽음을 앞두고 귀국 후에, 아내의 상을 치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일본에서 평상시에 자주 다니던 술집의 아가씨(정자), 작년에 불미스러운 일로 사이가 서먹해진 역시 일본에 유학온 한국인 여학생(을라), 배에서 만난 한국인을 일본 탄광 등지의 노동자로 데리고 가는 일본인, 부산의 술집에서 만난 대구 아가씨, 김천에서 교편 생활을 하고 있는 형님, 상경하는 기차 간에서 만난 사람들 등을 만나고 보면서 당시 일제시대의 암울한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사피엔스21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롭게 시도하는 한국문학 중단편 소설집으로, 어려운 용어를 설명해 주고, 소설의 말이에선 등장인물과 작품 설명을 넣어 내용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또, "두 파산"이란 해방 이후의 조선을 배경으로 한때는 친한 친구였지만, 이제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사이가 나빠진 두 여인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이 들어있다.

 

- 적개심이나 반항심이란 것은 압박과 학대에 정비례하는 것이나, 기실 그것은 민족적으로 활로를 얻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칠 년이나 가까이 일본에 있는 동안에, 경찰관 이외에는 나에게 그다지 민족 관념을 굳게 의식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래 정치 문제에 흥미가 없는 나는 그런 문제로 머리를 썩여 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하여도 가할 만큼 정신이 마비되었었다. 그러나 요새로 와서 나의 신경은 점점 흥분하여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을 보면 적개심이라든지 반항심이라는 것은 보통 경우에 자동적-이지적이라는 것보다는 피동적-감정적으로 유발되는 것인 듯하다. 다시 말하면 일본 사람은 지나치는 말 한마디나 그 태도로 말미암아 조선 사람의 억제할 수 없는 반감을 끓어오르게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에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민족적 타락에서 스스로를 구하여야 하겠다는 자각을 주는 가장 긴요한 윈동력이 될 뿐이다.

 

- '이게 산다는 꼴인가? 모두 뒈져 버려라!'

찻간 안으로 들어오며 나는 혼자 속으로 외쳤다.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

 

- 조선 와서 보아야 술이나 먹고 흐지부지하는 것밖에는 사실 할 일이 없다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 같기도 하지마는, 생각하면 조선 사람이란 무엇에 써먹을 인종인지 모르겠다. 아침에도 한잔, 낮에도 한잔, 저녁에도 한잔, 있는 놈은 있어 한잔, 없는 놈은 없어 한잔이다. 그들이 이렇게 악착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노력이요, 그리하자면 술잔밖에 다른 방도와 수단이 없다. 그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목표도 없이 질질 끌려가는 것이다. 무덤으로 끌려간다고나 할까? 그러나 공동묘지로는 끌려가지 않겠다고 요새는 발버둥질을 치는 모양이다. 하여간 지금의 조선 사람에게서 술잔을 뺏는다면 아마 그것은 그들에게 자살의 길을 교사하는 것일 것이다.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잊어버려라-이것만이 그들의 인생관인지 모르겠다.

 

- 지금 내 주위는 마치 공동묘지 같습니다. 생활력을 잃은 백의의 백성과, 백주에 횡행하는 이매망량 같은 존재가 뒤덮은 이 무덤 속에 들어앉은 나로서 어찌 '꽃의 서울'에 호흡하고 춤추기를 바라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하나나 내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고 용기와 희망을 돋우어 주는 것은 없으니, 이러다가는 이 약한 나에게 찾아올 것은 질식밖에 없을 것이외다. 그러나 그것은 장미 꽃송이 속에 파묻히어 향기에 도취한 행복한 질식이 아니라, 대기에서 절연된 무덤 속에서 화석되어 가는 구더기의 몸부림치는 질식입니다. 우선 이 질식에서 벗어나야 하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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