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과 모래

요즘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접하며 드는 생각은 쏠림 현상과 선택 번복의 자유다.
전의 대세가 한번 선택한 것에 대한 믿음과 고집이었다면, 지금은 반대로 선택의 자유와 선택의 번복이다.

지금 급하게 진행되고 있는 쏠림현상도, 곧 있음직한 쏠림 현상도 이런 선택 번복의 자유에서 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선택이 자유롭고, 선택의 취소 또한 자유로운 상황에서 선택을 주저하거나, 선택 취소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냄비 현상을 지적하던 풍토도 이제는 지적할 꺼리가 안 된다.
냄비 현상의 근원에는 선택할 번복하는, 그리고 그런 선택 번복의 자유를 당연시하는 풍토가 있는 것이다.

회원 가입을 하고, 서비스를 이용하고.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업체에 또 가입을 하고, 또 이용하고.
한 가지의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하는 카페가 꼭 하나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넘치는 정보에서 선택을 하고, 더 좋은 정보가 나오면 기존 정보는 과감히 버리는 일이 당연하다.

온라인에서 촉발된 이런 풍토는 오프라인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핸드폰의 번호 이동은 법적으로 보장되고, 번호 이동시 안내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된다.
각종 유선 서비스 업체들은 기존 계약의 위약금을 물어주면서까지 선택을 변경하라고 광고한다.
평생 직장 따위는 들어보지 못한 아이들도 있고, 직장은 물론 직업도 변경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태다.

선택의 가지수가 많지 않고, 이동이 불편했던 전과 달리 지금은 다양한 옵션과 이러한 옵션의 변경을 당연히 여긴다.
어제 좋았던 선택이 오늘은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은 선택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적어 지는 것이다.
이제 이런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한 서비스는 오직 한 곳에서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선택지를 제한하는 것이나, 선택을 강요하는 것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

진흙은 판이 기울어져도 쉽게 흘러 내리지 않는다.
반면 모래는 판이 아주 약간만 기울어져도 쉽사리 흘려 내린다.
판이 반대로 기울어지면 다시 반대로 쉽사리 흘러 내리는 것도 역시 모래다.